제 7 장: 사랑의 새로운 삶

우리는 한 질문으로 이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삶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이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죽음이라는
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죽음을 고려할 때 제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당혹스러운 죽음

모든 사람은 두 가지 공통되는 인생의 사건을 경험합니다:

탄생과 죽음.


그러나 우리는 죽음을 충격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바라봅니다.

한 철학자는 인생에서 오로지 분명한 것는 죽는라는 말을 했습니다. 죽음의 지평선은 우리가 인생에서 하는 모든 것을 물들입니다.

죽음이 정말 자연스러운 것이고
인생에서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라면,

죽음 앞에서 왜 그렇게 마음이 당혹스러울까요?

어려서부터 사람이 죽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서 삶에서 죽음이라는 미지의 경계를 넘어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 존재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위기감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깊은 본능으로 부터 죽음이란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떠오릅니다.

분명 삶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 곁에서 누구인가가 죽는 당혹스러운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까? 어떠한 느낌이었습니까?

죽음은 우리에게 항상 낯선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일부가 죽음 뒤에도 끝나지 않고 여전히 이어져 가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있습니다.

우리가 죽음에 대하여 그렇게 거부감이 드는 이유는 우리의 영혼에는

영원함의 자국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존재로 창조되었을 때 새겨진 미지의 기억이 어떤 순간에 우리 자신의 초월적인 감각으로 전해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 모든 현상은 성경의 기록대로 죽음이 하나님의 원래 디자인의 일부가 아니기 때문이지 모릅니다.

성경에 따르면, 죽음은 하나님의 계획에 없었습니다.

죽음이라는
비극

우리는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죽어 있는 크리스마스 나무를 장식 하듯 우리의 인생을 장식하는데 삶을 소비합니다.

우리는 촉박한 하루 하루의 삶으로 인하여 일상을 잠시 멈추고 삶에 관한 질문을 생각할 기회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인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러나 죽음 앞에서 우리가 쫓고 있는 세상의 모든 거짓들이 서서히 사라지고, 삶에 의미를 가져다 주는 한 가지가 드러나게 됩니다.

죽음을 앞두고 학위, 돈, 성취가 있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것들이 당신에게 의미가 되어 줄까요?

이것들이 삶을 잘 살았다는 확신을 줄까요?

죽음의 문턱에 있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자기의 학위와 은행 계좌를 보여 달라고 하고 있다고 상상을 해보면,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며 살았던 것들이 결국 이것을 위함이었을까요?

마지막 시간이 되었을 때, 우리는 남겨 두고 떠나야 할 소유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슬퍼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문제는 아무리 사랑을 붙잡으려고 해도 죽음으로 인하여 그 영원함을 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관계는 '영원'이라는 전제가 있을 때 온전해 지는 것인데, 이 세상에서의 사랑은 비극적이게도 죽음을 넘어 설 수 없는 일시적이고 무력한 존재일 수 밖에 없습니다.

타락이 보여주는 또 다른 결과는 우리의 모든 관계들이 죄로 인하여 파괴되거나 죽음에 의해 단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죽음을 마지막 원수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6절)

죽음은 하나님의 창조에 들어 있지 않았습니다. 죄로 인하여 이 세상에 들어온 죽음은 가족이든 친구든 관계의 고리 안으로 들어와서 결국 그 관계들을 영원하지 못한 것으로 만듭니다.

죽음은 모든 인생들을 미완성의 파편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영원함:
사랑의 조건

만일 모든 것이 죽음으로 끝난다면, 산다는 것은 잔인한 농담일 뿐입니다.

영혼은 있다가 사라지는 신기루와 같은 존재이고, 사랑이란 일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부활: 약속

죽음을 이기신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은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일을 통해서 우리의 삶에 의미로 다가옵니다. 에덴의 타락 이래로 사람들은 죽음과 타락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거듭해 왔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힘과 소망을 잃기 직전에, 마침내 예수님이 오셔서 부활하셨고, 죽음의 권세를 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이르는 길을 만드셨고,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심으로 믿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과 같이 부활의 승리에 참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죄의 힘은 파괴하고 분열시키지만 부활의 힘은 치유하고 결속시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영생이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존재하니까요.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성경 구절들을 읽으시려면 클릭하세요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의 피를 걸고하신 약속이 있어서 안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를 받아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부활의 "첫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도 또한 부활하게 될 것이고, 하나님과 함께 할 것이라는 경이로운 약속을 상징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22절을 읽으십시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염려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에게 미래는 있을 때 움켜쥐고 최대한 누려야 하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4장 18-21절을 읽으십시오.

천국: 실현된 약속

천국에서 이루어지는 약속들이 무엇인지 알아보시려면 스크롤 하십시오.

요한복음 14장 1-4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예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우리의 사랑이야기는 천국에서 계속됩니다.예수님이 그 분이 계신 곳에 우리가 있도록 장소를 예비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의 사건은

영원한 사랑에 대한 약속이고,

하나님이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천국은 어떤 곳일까요?

천국하면 아기 천사가 날아 다니면서 하프를 연주하는 장면이 떠오르지만, 이것은 성경이 아니라 고대의 종교적인 그림들이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볼 때 작은 천국을 경험합니다. 아이의 얼굴을 몇 시간동안 바라봐도 채 몇 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다고 느낍니다.

사랑은 시간의 경계를 허물어 버립니다. 천국은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경배가 천국의 중심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타락하고 저급한 것들에 너무 오래 빠져 왔기에

진정으로 숭배할 가치가 있는 것을 경외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을 생각할 때 무엇이 없을까에 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C.S 루이스는 휴가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아름다운 해변에서 진흙으로 파이나 만들고 있는 시골 아이 같다고 표현했습니다.

문제는 더 높은 것을 바라보려 하지 않고; 우리가 매우 작은 것에 만족해 버린다는 것입니다.

유일하게 오직 경배할 가치가 있는 하나님을 경배할 때 매우 큰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쁨은 이제까지 알 수 없었던 기쁨입니다.

예수님과의 삶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 하리라

누가복음 9:24

예수님을 따르는 삶에 초대를 받는 다는 건 예수님을 믿고 충성하는 관계에 초대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해서 자기를 잃어버리게 될 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자신의 삶을 꼭 붙들어 야 할 것처럼 사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그 손을 놓으라고 간청하십니다. 대신 마치 예수님을 믿기로 태어난 사람처럼 살아 보라고 하십니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할까봐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됩니다.

많은 사람들, 특히 삶에서 큰 실패 없이 살아온 사람들은, 기독교인으로서도 실패하거나 잘못하게 될까봐 두려워 합니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은 복음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해서 생긴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온전히 인정할 때, 우리는 기독교인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우리가 당연히 실패할 것이라는 것도 의미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현실은 신앙생활 뿐 아니라 결혼이나 부모의 삶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분과 함께 걷는 자를 혼자 알아서 따라오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성령과 교회를 통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성경에서 자주 나오는 말씀은 "두려워 말라" 입니다.

생각해 볼 만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살아계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 반응하는 것이 두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가벼운 관심으로 코스 101 을 시작하였고, 여러 궁금증에 대하여 답을 얻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복음의 진실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갈등이 일어났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시는지 모릅니다. "두려워 말라."

두렵지만 마음이 끌리는 하나님의 존재는 우리를 화해와 사랑의 초대로 다가오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이번주의 내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하나님과의 관계를 시작하는 선택을 하는데에 어떤 걸림돌이 있습니까?

저는 기독교인이 될 준비가 되어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