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장

인생이란 무엇인가?

시작
우리는 매일 많은 질문을 합니다
내 핸드폰이 어디있지?
오늘 뭐 먹지?
차는 언제 오는 거지?

하지만 가끔씩, 커피 한 잔을 마실때나 잠자리에 누워 잠들지 못할 때, 우리 마음에 인생에 대한

중요한 질문들이

떠오릅니다.

나는 누구지?
내 인생의 목적이 뭐지?
내 삶은 궁극적으로 어디를 향해 가고 있지?
이런 중요한 질문들은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어떻게

살 것인지

어떤

가치를

추구할 지

인생의

의미를

어디서 찾을 지

인생에 관한 이러한

중요한 질문들에

어떻게 대답 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들의 핵심에는 사실 또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목적과 의미가 궁극적으로 결정되어 집니다

그렇다면 어떤 대답들이 가능할까요?
두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첫번째 대답

나는 그저 복잡하게 만들어진 생물학적 기계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두번째 대답

나는 영혼을 가진

영적 존재

이다

첫번째 대답에 대해 먼저 알아봅시다.
다음

자연주의

자연주의라고 알려진 이 세계관은 모든 현실이 물리적으로만 구성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생존기계 - 유전자라고 알려진 이기적인 분자들을 보존하도록 생각없이 프로그램된 로봇 운반체일 뿐이다.

리차드 도킨스

(Richard Dawkins)

이기적 유전자

이러한 세계관이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요?


리차드 도킨스(Richard Dawkins)보다 반세기 전에 무신론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은 자연주의 세계관이 가진 파급 효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합니다.

인생의 의미에 대한 러셀의 결론을 고려해 보십시오

"인간이 그들이 성취한 목표를 예측하지 못했었던 명분의 소산이라는 것; 인간의 근원, 인간의 성장, 인간의 희망과 절망, 인간의 사랑과 인간의 신념들이 단지 우발적인 원자 배열의 결과이며 어떠한 불꽃도, 어떠한 영웅적 행위도, 어떠한 사고와 감정의 강렬함도 무덤 너머까지 개인의 삶을 지속시킬 수 없다는 것; 시대에 걸친 모든 노력과 헌신과 영감이, 인간의 천재성이 발하는 정오의 찬란함도 태양계의 거대한 죽음과 함께 소멸할 운명이라는 것, 그리고 인간이 이루어낸 성취의 전당이 필연적으로 폐허가 된 우주의 잔해 아래에 매장된다는 것. [...] 오직 이러한 진실들의 뼈대 내에서만, 오직 깊은 절망의 굳은 토대 위에서만 영원의 거처는 안전하게 건설될 수 있다.”

버트런드 러셀

자유인의 숭배

무신론자로써 러셀은 자연주의 세계관을 가지고 논리적인 결론을 지었습니다. 인생은 초월적인 의미로 충만해 보이지만, 자연주의가 사실이라면 인생이 초월적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는 냉정한 현실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만약에 자연주의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살아 움직이는 살덩어리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의 육체일 뿐입니다.

우리가 육체 이상의 자아를 가졌다고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착각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와 놀랍게도 똑같은 현대적 인생관을 가진 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음은 누가복음 12장 15절부터 20절을 인용한 구절입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이 이야기 속의 부자가 자신의 '영혼'이 '곡식'을 받아먹으며 살아간다고 여긴 것과 같이, 인간이 찾을 수 있는 최고선은 아마도 그의 욕망들을 충족시키고, 고통을 최소화하며 즐거움을 극대화 하는 것일 겁니다.

우리가 단지 육체라면, 우리 인생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 (우리는 단순히 육체가 아니며 욕망을 채우는 것 이외의 초월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저 비현실적인 거짓말인가요?

덴마크 철학자 키르케고르는(Kierkegaard) 사람의 인생이 강의 수면위로 던져진 조약돌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몇 번 튕겨지다가
인생 그 자체와 같이
나아갈 힘을 잃으면
강가 밑으로 가라앉아
사라져 버린다."

다시 말해, 우리가 결국 다 죽을 것이라면, 이 짧은 인생을 어떻게 살지 아무리 계획을 짠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모두

무의미합니다.

이것은 인생이 식욕과 쾌락을 채우는 것 이상이라는 우리의 직관적인 사고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신론적 자연주의 세계관에서는 더 나은 답변을 찾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는 과학적 진리 외에는 진실이 없으며, 과학이 감지할 수 있는 것 (즉, 원자)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 때문입니다.

이것이

합리적인 답인가요?

자연주의는 인생에 대한 암울한 관점일 뿐만 아니라 삶의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는데 있어서의 고려점들을 인위적으로 제한합니다.

인간의 본성, 인간의 가치, 그리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관점이 있을 까요?

다음
이제까지 첫번째 대답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첫번째 대답

나는 그저 복잡하게 만들어진 생물학적 기계일 뿐

그 이상은 아니다

두번째 대답

나는 영혼을 가진

영적 존재

이다

이제 두번째 대답에 대해 알아봅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영원한 영혼을 가진 존재로

만드셨다고 합니다.

단순한 생물적 존재 이상을 갈망하는 영혼으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육체 이상의 존재로 만드셨다면, 어떠한 음식이나 쾌락으로도 만족시킬 수 없는

영적 갈망을

인간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합당합니다.

다음

C.S. 루이스

나는 이 세상의 어떤 경험으로도 만족시킬 수 없는 욕망을 발견합니다. 이에 대해 가장 합당한 설명은 내가 다른 세상을 위해 만들어 졌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어떠한 즐거움도 그 욕망을 만족시키지 못한다고 해서 우주전체가 사기라는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세상의 즐거움들은 결코 그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을 깨우기 위한 것, 진정한 만족을 제안하기 위한 것입니다.

순전한 기독교

성경은 첫 장에서 부터 인간이 "우발적인 원자 배열" 이상의 정체성을 가진다고 말합니다.


자, 그렇다면 본원의 문제로 들어가서 성경이 인간의 정체성과 목적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봅시다.


기독교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많은 사람들은 종종 창세기에 있는 창조 기록을 잘못 해석해서 성경 첫 부분에서부터 가로막힙니다.

어떤 사람이 화학실험 설명서를 보면서, "이 책은 줄거리가 없어!"라고 말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은 자신이 읽고 있는 책의 장르를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실험 설명서는 등장인물이나 줄거리에 중점을 두지 않습니다. 실험을 어떻게 하는지 설명하는 글이지요.


이처럼 사람들은 창세기에 있는 창조기록을 실험 설명서처럼 읽으면서 창세기에서 중점으로 두고 있지 않는 점들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창세기 1장의 장르는 무엇이며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창세기에 나오는 창조기록은 신학적인 서술이며 "어떻게"가 아니라 "" 그리고 "누가" 라는 질문에 초점을 둡니다.

왜 이 세상에

뭔가가

존재할까?

누가

이 우주를

창조했을까?

사람은

누구인가?

사람과

창조주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Learn more about the genre of Genesis.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설득하려 하지 않습니다.

(뒷받침하는 주장들이 많이 있지만요)

그러나 성경은 첫 장부터 하나님의 활동 즉, 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 선언합니다.

창세기 1장에 있는


창조기록에서 우리는 반복되는 문장들을 다음과 같이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하나님께서 ...를 창조하셨습니다
...이 있으라!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다음은 창세기 1장을 인용한 구절입니다.

창세기 1장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흔히 말하는 관점들과는 다른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멀리 있는

무관심한
존재

피해야 할

강력하고
앙심을 품은

권력

&

관계 없는
노쇠한

할아버지

&

그러나 창세기 1장을 통해 우리는 다른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번성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창조하십니다

하나님께선

풍부함과 다양성을

기뻐하십니다

&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번창하고
번성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사람들에게
좋게 창조하셨습니다.

이는 인간이 창조 이야기에서  특별한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26-27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2:7-8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특별한 히브리어 동사가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잠시 멈추고, 심호흡을 하듯, 신중하게 사람을 창조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른 동물들은 '그 종류에 따라' 창조를 하셨지만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선언합니다.

성경에선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 하며 하나님과 우리의 특별한 관계를 강조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우리와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가 형성된 이유는

우리가 단지 육체가 아닌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이의 출산을 기다리는 부모가 아이의 방을 꾸미고 준비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선 우리를 위해 이 세상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놀라운 모습입니다.

웅장한 산들과 아름다운 풀밭과 강 그리고 나무들..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선 우리를 위해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 전에 잠시 생각해 보세요.

당신은 하나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요?

다음

처음에 우리는

인생의 중요한 질문들로

시작하였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러한 세계관이 시사하는 바 (예를 들어, 가치와 의미의 개념에 대한 거부) 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는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궁극적으로

무의미

하다는 신념에 따라 우리 인생을 살아 가야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윌리엄 레인 크레이그 (William Lane Craig)


하나님이 없다면 우주는 사고나 우연히 일어난 폭발의 결과물에 불과합니다.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없습니다.

인간의 경우, 그는 자연의 변덕, 다만 물질의 생성물에 시간과 우연을 더한 것에 불과합니다. 사람은 단지 이성적인 존재로 진화된 점액 덩어리일 뿐입니다.

인류와 곤충이 둘 다 우연과 필연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에 인류가 곤충보다도 더 목적성이 있는 인생을 가질 이유가 없습니다.

합리적인 믿음

하지만, 성경에서 주장한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라면

우리는 단순한 분자 이상의 존재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육체 이상의 존재입니다. 또한, 우리가 갖고 있는 더 높은 것을 향한 열망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며, 오히려 육체를 초월하는 존재로서 당연히 갖는 우리의 본질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그냥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든, 다음 몇 주 동안 기독교 복음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도록 합시다.

이 것으로 제 1장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읽을거리를 더 원하신다면, 전자문서 버전의 1장을 여기서 찾으실 수 있습니다.

추가로, 하나님을 어떻게 더 알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아래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제 이야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