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하나님의 계시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관계를 맺고 싶어하신다는성경의 주장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와의 관계를 원하신다면...
왜 하나님을 찾기가 어렵게 느껴지는 걸까요?
하나님은 왜 단순히 우리 앞에 나타나시지 않으실까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설명한다고 주장하는 이 성경책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는걸까요?
이 장에서는 이런 질문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평생 소망없이 길을 잃은 것이겠지요.
만약 하나님이 단순히 우리와 동떨어져 계신 무심한 신이시라면...
하지만 성경의 처음에서부터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아담과 하와에게 다가와서 물으십니다.
이 시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왜 하나님은 그냥
생각해보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쉽게 알릴 수 있으십니다...
그냥 하늘을 열어서 모든 사람이 듣도록 소리치시면 될테니까요.
그렇다면 지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이 존재하시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시가 만에 하나 나타나는 초자연적인 희귀 현상이 아니라고 사람들에게 설득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여러 나라 언어로 계속 쓰시라고 여쭙고 싶은 마음이 들 것입니다.
가끔은 순수한 색들의 향연이나 천상의 소리까지 동반해서 말이지요.
"몇 년이 지나도 하나님이 존재하신다는 증거는 모든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매일 밤 극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마침내 마지막 남은 회의론자까지도 하나님이 확실하게 존재하신다고 납득할 것입니다."
프레드릭 뷰크너,
위대한 패배
하지만, 뷰크너는
그래서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어떻다는 것입니까?
뭐가 달라진다는 것인가요?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레고리 보이드 박사는 "무신론자의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우리와 맺고 싶어하십니다. 구름 위에서 우리에게 계시를 하는 것이 이러한 관계를 가능하게 할까요?
이는 기껏해야 사람들을 경탄하게 만들거나 겁에 질려 복종하게 할 것입니다. (단지 일시적인 반응들입니다.)
이는 복종을 강요할 수는 있지만,
사랑을 생기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의 본성을 드러내시기 위해서는 그의 다른 본성들 - 다시 말해, 그의 권력과 영광 -이 가려져야 합니다.
신성하신 하나님이 유한한 인간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우리가 압도되지 않도록 하나님이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을 자제하셔야 합니다.
덴마크인 철학자 쇠렌 키에르케고르는 "왕과 시녀"라는 우화를 통해 이러한 어려움을 설명합니다.
만약에 한 왕이 평민 처녀를 사랑했다고 해봅시다. 왕은 권력이 있고, 온 왕국을 지배하고 있었지요.
이 왕은 어떻게 해야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이 처녀가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왕이 처녀의 숲속 오두막집으로 현수막을 휘날리며 하인들을 거느리고 갔다면...처녀가 압도 되었을 것입니다.
젊은 처녀여, 두려워 말라!
꺄아아아아아악!
좋은 방법이 아니겠지요...
자신의 사랑을 진심으로 전하기 위해서 왕은 아마도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 했을 것입니다. 평범한 농부로 변장하면서까지 말이지요.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를 맺기 위해서 자신을 드러내시기를 자제하셨습니다.
만약에 한 남자가 자신의 차가 사막에서 망가진 이야기를 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가장 가까운 마을과도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자신의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차로 두시간을 달려서 사막의 좁은 길에서 그를 발견합니다.
친구는 그의 차를 견인하는 것을 도와주고, 그의 집까지 차로 데려다 줬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그 친구의 성품이 어떠한지 잘 보여줍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얼마나 돈독한지도 잘 보여주고요.